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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부요한 교회 설교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는 터키에 있습니다.

지금은 이즈미르라고 불려지며, 터키의 3대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일찍이 상업이 발달하여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도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황제를 향한 충성심이 남달리 강해서 황제성전이 제일 먼저 세워졌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음유시인 호머의 고향이며, 에게해의 진주,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면류관이라고 불려졌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주님께서는 9절에서 서머나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이해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에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들만 나왔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의 본문에 드러나는 것과 같이 환난이 궁핍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이해됩니다.

서머나가 항구도시로 알렉산더 대왕의 시절부터 이미 상업이 발달하면서,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 살았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로마의 시대에는 황제를 향한 남다른 충성심으로 가장 먼저 황제신전이 세워졌던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교회는 양편의 핍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서머나교회를 변절자로 낙인 찍어 핍박하였고,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신앙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만 섬기라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예수를 왕으로 고백하는 교회적 신앙이 핍박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서머나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냉대와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난이 짧지 않게 계속되었기 때문에, 서머나교회의 교인들은 가난하게 되었고, 그 어려움이 많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9절에서 이러한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실상은 너희가 참 부요한 교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서머나교회가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고 믿음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곳을 살피시는 주님의 눈길 앞에서, 이 소박한 교회는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요, 주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적 부유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화가 있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했던 사도요한의 제자로 폴리갑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서머나교회의 감독, 그러니까 오늘날의 목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서머나교회에도 로마 황제의 기독교 핍박이 크게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서머나의 총독은 폴리갑을 체포했고, 그에게 화형을 언도했습니다. 그의 나이 86세였습니다.

폴리갑은 자기를 체포하려고 왔던 병사들을 집안으로 맞아 정성껏 대접하고, 그들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끌려가 화형을 기다렸습니다.

화형이 거행되기 직전에 총독은 황제의 이름을 빌어 자비를 제안했습니다. 만약 폴리갑이 지금이라도 그리스도를 버리고 로마의 황제를 주님으로 인정한다면 그를 풀어줄 수도 있다는 제안이었습니다.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86년동안 그리스도를 섬겨왔고, 주님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왕이시요, 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겠는가?"

그는 스스로 화형의 장작더미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화형을 집행하는 형리에게 외칩니다.

"그대들은 한 시간 가량 사르고 없어질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여 장차올 심판의 불을 모르는가? 왜이리 지체하고 있느냐 어서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라"

결국 폴리갑은 찬송을 부르며 순교했습니다.

 

폴리갑의 죽음은 신자들에게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주었고, 교회를 단단하게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서머나교회의 핍박을 이미 아셨던 주님이기에 10절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렇습니다.

서머나교회는 가난하지만 부요한 교회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신앙을 위하여 세상의 부요함을 스스로 버렸기 때문이며,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도 이러한 믿음을 받는다면 거기에 합당한 신의를 지키려고 할 터인데, 하물며 예수님께서 이런 교회를 어찌 실망시키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에는 불행하게도 이 서머나교회의 부흥이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터키는 현재 국민의 98%가 이슬람을 믿는 나라입니다.

이즈미르에는 서머나교회를 기념하는 교회가 지금도 세워져 있지만, 그 모습은 작고 보잘것없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과거에 이렇게 빛나는 교회가 서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서머나교회의 신앙은, 이 성경의 말씀과 함께 지금도 살아서 수많은 교회들, 가난하지만 부요한 교회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에서 주님은,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악한 자들의 손에 죽으셨습니다.

빌라도와 헤롯, 그리고 불의했던 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사형은 인간이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준엄한 형벌이며, 인간으로서의 모든 희망이 끝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영광을 교회에 보이시고, 하늘에 오르사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이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교회의 머리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물의 주가 되었는지 다시 마음속에 새겨 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선택입니다. 우리는 둘 혹은 셋 중에서 가장 좋게 생각되는 것을 선택합니다.

시장에서 과일을 살 때에도, 비슷하게 생긴 과일들 중에서 조금 더 크고, 신선하고, 맛있게 보이는 것을 선택하려고 망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 대한 선택에 있어서는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하겠습니까?

만약 우리의 눈에 예수님의 말씀과 약속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하늘나라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서머나교회와 같이 가난하지만 부요한 교회가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아직도 세상은 좋아 보이고, 성경의 약속과 하늘나라와 복음적 삶은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보이는 것입니다.

 

일본에 와서 보니, 휴일이 참 많습니다.

일본도 열심히 일하는 나라이고, 한국도 그러합니다. 아마도 퇴근 시간 이후에도 추가 임금 없이 서비스로 일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은 먹는 것은 잘 챙기는 편입니다. 늦게 일하게 되면 꼭 같이 저녁을 먹고 일하지 일본처럼 밤 10, 11시까지 저녁식사도 없이 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이 한국보다는 휴일이 많습니다. 5일 근무제도 훨씬 잘 정착되었고, 연휴도 많아서 좀 더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시간과 여건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더 편하다는 사람도 있고, 한국이 더 편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많이 비슷한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교회와 일본의 교회는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심지어 일본인 교회뿐 아니라, 일본의 한국인 교회도 한국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아웃리치라는 것을 겪어 왔습니다.

아웃리치는 평신도의 단기선교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직장인이며, 학생들인데, 선교지의 교회를 돕기 위하여 자비량으로 외국에 가서 일주일 정도를 머물면서 현지의 교회를 돕고, 물질을 후원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일본에 오는 것이 환율이 좋아고 할 때도, 10배였습니다.

결국 그 일주일에 그들은 보통 200~300만원 정도를 투자하게 됩니다. 또한 많지 않은 연휴와 휴가를 모두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어 한국의 자기 집에 다녀오려고 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 돈이면 필리핀, 태국, 혹은 중국과 같은 곳에서 고급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제법 재미있고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는 시간과 돈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선교를 위하여 투자합니다.

물론 선교와 관광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눈살을 찌프리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헌신을 그렇게 폄하하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한 번도 외국여행 못해본 분들이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으로 선교하기 위해, 전도하기 위해 헌신하는 경우들을 겪을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반대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비용을 투자하여서 알지도 못하는 교회를 돕기 위하여 이국 땅에 갈 의향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여러분의 황금 같은 휴가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한국교회가 강한 것은, 모든 교회가 성도가 많고 부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에는 이렇게 자기를 헌신하는 신자들, 서머나교회의 신자들과 같이 믿음을 위해 기꺼이 가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저력과 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치를 선택할 때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으로 보상하여 주신다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축복의 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합니다.

포기하는 시늉이 아니라, 정말 포기해야 합니다.

편하고 싶고, 부요 하고 싶고, 유명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부요함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서머나교회가 부요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것을 위해 기도할 사람들이 있었고, 주님을 위해 순교할 목회자가 있었고, 불 같은 시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금과 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당을 짓고 숫자를 자랑하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그런 것은 물거품과 같습니다.

우리는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내적인 부요함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서머나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목적을 향해 계속 기도하며 함께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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